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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2023년 롯데 개막전을 보면서 "이번엔 진짜 다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강남, 노진혁, 한현희. 총액 170억 원짜리 패키지 영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기대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지금은 쓴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유돈노 트리오'라는 이름이 이렇게까지 KBO 팬들 사이에 박혀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170억짜리 승부수, 왜 그 선택이었나
2019년 성민규 단장이 부임하면서 롯데는 '3년 내 우승권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겨울, 그 약속을 지키려는 듯 외부 FA 세 명을 한꺼번에 데려옵니다. LG에서 주전 포수로 뛰며 가을야구 경험을 쌓은 유강남과 4년 최대 80억 원에 계약했고, 직전 시즌 OPS 0.8 이상을 기록했던 노진혁과는 4년 최대 50억 원, 선발과 불펜을 오갈 수 있는 한현희와는 3+1년 최대 40억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제가 당시 팬 반응을 돌아봐도, 오버페이라는 말은 분명 나왔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포수랑 유격수는 진짜 1군다운 선수가 없었으니까"라는 공감도 컸죠. 롯데의 고질적인 포수·유격수 공백을 생각하면, 1인분이라도 제대로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체감 효과는 클 거라는 기대가 팬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지금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유강남의 강점은 프레이밍(Framing)이었습니다. 프레이밍이란 포수가 스트라이크 경계에 걸린 공을 심판에게 스트라이크로 보이도록 미세하게 잡아내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심판의 판정 결과에 영향을 주는 포수의 핵심 능력입니다. 그런데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도입 논의는 이미 영입 전부터 리그 안에서 진행 중이었고, 퓨처스 리그에서는 실제로 시범 운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프레이밍 가치가 사라질 게 예견된 상황에서 80억을 베팅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 유강남: 4년 최대 80억 원 / 프레이밍 특화 포수, ABS 도입 직전 영입
- 노진혁: 4년 최대 50억 원 / 직전 시즌 OPS 0.8 이상, 수비 범위·내구성 리스크 존재
- 한현희: 3+1년 최대 40억 원 / 키움 시절 이미 하락세, 고점 대비 연봉 삭감 상태
4년의 성적표, 숫자로 보면 더 참담하다
2023년 첫 시즌은 그나마 '실패 확정'을 유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유강남은 121경기에 나와 10홈런 OPS 0.726을 기록했고, 노진혁은 5월까지 팀 내 공격 지표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한현희만 평균자책점 5.45로 첫해부터 흔들렸죠. 저도 당시엔 "1년 차니까 적응 기간 주자"고 생각했습니다.
2024년이 문제였습니다. ABS가 본격 도입되면서 유강남은 프레이밍이라는 특기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52경기 출전에 OPS 0.6 미만, 7월엔 왼쪽 무릎 반월판 연골 봉합 수술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습니다. 노진혁은 73경기에서 OPS 0.604. 허리 부상으로 유격수 수비도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결국 1루수로 밀려났습니다. 한현희는 57경기 평균자책점 5.19, 롱릴리프와 불펜을 오가며 마당쇠처럼 굴렀는데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2025년에는 유강남만 반등의 기미를 보였습니다. 5월 한때 타율 0.360대, OPS 1.0에 근접하는 타격을 보여줬는데, 그러나 도루저지율이 8.3%에 그쳤습니다. 도루저지율이란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을 때 포수가 막아내는 비율로, 8.3%면 사실상 뛰면 무조건 나가도 된다는 수준입니다. 타격이 살아나도 수비에서 치명적 약점이 남아 있었던 셈입니다.
4년간 세 선수의 누적 WAR(승리 기여도)를 네이버 기준으로 합산하면 6.27에 불과합니다. WAR이란 해당 선수가 평균적인 대체 선수 대비 팀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입니다(출처: 네이버 스포츠). 단순 계산으로 WAR 1당 약 27억 원을 쓴 셈이고, 양의지 한 시즌이면 이 수치를 채울 수 있다는 비교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의 상당 부분이 이 세 선수에게 묶이면서, 추가 보강의 여지도 좁아진 건 덤이었습니다.
계약 종료 이후, 롯데는 무엇을 배웠나
2026년을 끝으로 유돈노 트리오의 계약은 모두 만료됩니다. 세 선수 모두 등록일수 미달로 FA 재자격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 재계약 여부는 구단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한현희는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된 상태이고, 노진혁 역시 전민재와 이호준이 유격수 자리를 완전히 가져가면서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유강남은 손성빈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내줬고, 지명타자로서의 타격 메리트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실패의 빈자리를 내부 자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2025년 트레이드로 합류한 전민재는 2026년 들어 수비에서도 큰 폭의 성장을 보이며 주전 유격수 자리를 완전히 굳혔습니다. 포수 손성빈은 후반기 OPS 0.9에 근접하는 타격 폭발로 안방을 책임지는 자원으로 자리잡았고요. 롯데 1차 지명 포수가 이렇게 성장해준 것은, 팬 입장에서 유돈노 트리오 계약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진짜 안도감이었습니다. 신인 불펜 박정민 역시 후반기 필승조 한 축으로 자리를 잡으며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출처: KBO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외부 투자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투자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리스크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큰돈을 썼다는 데 있으니까요. 현 단장이 전임 단장보다 나은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질문엔, 솔직히 저도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전임 단장은 적어도 방향성 자체는 있었는데, 지금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샐러리캡 여유가 생기면 어디에 쓸지가 핵심입니다. 롯데는 큰돈을 써본 구단입니다. 홍성흔 이후 FA 성공 사례라고 딱 꼽히는 이름이 거의 없다는 게 지금 롯데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돈을 쓰되 어떤 기준으로 쓰느냐, 그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몇 년 후에 또 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돈노 트리오라는 별명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A. 한현희의 별명 '한돈'에서 착안해 유강남·노진혁·한현희 세 선수를 묶은 명칭입니다. 세 선수의 이름 첫 글자를 따면 '유·돈·노'가 되고, 이것이 "돈을 유용하게 쓰지 못했다"는 의미와 맞물리면서 KBO 팬들 사이에 굳어진 표현입니다.
Q. ABS 도입이 유강남에게 왜 그렇게 치명적이었나요?
A. 유강남의 가장 큰 강점이 프레이밍, 즉 심판 판정에 영향을 주는 포수 기술이었는데,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가 도입되면서 이 능력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됩니다. 타격이나 리드 능력으로 대체 가치를 만들어야 했지만 그 부분이 뒷받침되지 못했고, 결국 80억 원짜리 계약의 근거가 통째로 흔들린 셈입니다. 영입 전부터 ABS 도입 논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구단의 판단 착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Q. 노진혁은 왜 유격수로 쓰기 어려웠나요?
A. 영입 당시부터 노진혁은 수비 범위와 종합 수비 기여도 지표가 음수에 그쳤고, NC 시절에도 유격수보다 3루에서 더 많이 기용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허리 부상이 반복되면서 유격수 수비 자체를 소화하기 어려운 몸 상태가 되었고, 결국 1루수로 밀려나게 됩니다. 전민재라는 강력한 내부 대안이 등장한 것도 완전히 존재감을 잃게 된 결정적 이유입니다.
Q. 롯데는 앞으로 FA 시장에서 달라질 수 있을까요?
A.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저처럼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홍성흔 이후 FA 성공작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팬들의 공감대가 워낙 강하고, 지방 연고 특성상 S급 자원 유치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다만 전민재·손성빈·박정민이라는 내부 자원이 자리를 잡은 만큼, 이 토대 위에서 필요한 포지션에 선택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봅니다.
결론
유돈노 트리오의 실패는 단순히 선수 세 명이 기대 이하였다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170억 원이 묶이는 동안 롯데는 추가 보강의 선택지를 스스로 좁혔고, 리빌딩인지 우승 도전인지도 불분명한 어정쩡한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제가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바로 그 방향성의 부재였습니다.
다행히 전민재·손성빈·박정민이라는 새 축이 생겼습니다. 이제 진짜 질문은 "얼마가 비느냐"가 아니라 "그 여유를 어떤 기준으로 쓸 것이냐"입니다. 롯데는 큰돈을 쓸 줄 아는 팀입니다. 이번엔 지난 실패에서 뭔가를 배웠다는 걸 보여줄 차례입니다.